과거의 성공담에는 거의 정해진 문법이 있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수많은 실패를 견딘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오른다. 우리는 이병철, 정주영, 이건희 같은 선대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이 얼마나 큰일을 해낼 수 있는지 배웠다.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산업을 일으키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낸 과정은 지금 들어도 대단하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피땀 흘려 노력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부 안 하면 너도 나중에 청소나 한다.”
“열심히 안 살면 아파트 경비원밖에 못 된다.”
과거의 어른들은 이런 말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했다. 그러나 그 말은 아이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동시에, 누군가의 노동과 삶을 아래에 두는 말이기도 했다. 현재 자신이 가진 직위와 재산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자신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오만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노력은 미덕을 넘어 신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고, 성공을 곧 자신의 우월함으로 착각하는 나르시시즘을 길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같은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만큼 노력해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부모에게 태어났는지, 어느 나라와 시대에 태어났는지, 건강한 몸을 가졌는지, 좋은 스승을 만났는지, 실패한 뒤 다시 도전할 여유가 있었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안젤리나 졸리는 한 수상 소감에서 자신과 같은 능력과 열망, 노력할 의지를 가진 여성이 세계 어딘가의 난민촌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여성은 자신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더 좋은 연설을 할 수도 있지만,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는 왜 이것이 자신의 삶이고, 저것이 그 여성의 삶인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참고: Oscar's Speeches Database)
이 말은 성공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성공한 사람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노력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론 머스크는 창업가들에게 주당 80시간에서 100시간씩 일할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남들이 40시간 일할 때 100시간을 일하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훨씬 빠르게 앞서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의 엄청난 몰입과 실행력이 지금의 성취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참고: YouTube)
그러나 누구나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한다고 일론 머스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100시간을 일하고도 가게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가족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한다. 누군가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성장할 수 없는 자리에서 몸만 소모한다. 노동시간은 같아도 그 시간이 축적되는 방향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몇 시간을 일했느냐가 아니다.
무엇이 나를 그 일에 자발적으로 오래 머물게 했는가.
내가 쏟은 시간이 어디에 쌓이고 있었는가.
그 노력이 다음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있었는가.
어쩌면 100시간의 몰입은 성공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자신이 믿는 일을 만났고,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자원과 동료와 환경이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졸업 연설에서 미래의 점들을 미리 연결할 수는 없으며, 자신의 직감이나 운명, 삶, 카르마 같은 무엇인가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하는 일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더라도 언젠가 점들이 연결될 것이라 믿어야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따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참고: Stanford News)
아무 생각 없이 버티는 100시간보다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10시간이 나을 때도 있다.
무작정 열심히 살라는 말은 때로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더 빠르게 지치게 만든다. 방향을 잃은 노력은 성실함이 아니라 소모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차라리 멈춰서 쉬고, 다음 기회를 살피고, 자신이 오래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편이 낫다.
그래서 이제 성공은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성공은 대략 이런 것에 가깝다.
노력과 선택, 타고난 조건과 시대의 흐름, 주변 사람과 우연한 기회가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낸 결과.
운이 전부는 아니지만, 운을 빼고 성공을 설명할 수도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운은 하늘에서 무작위로 떨어지는 복권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교육, 안전한 사회, 실패를 감당해주는 제도, 새로운 시도를 비웃지 않는 문화, 능력 있는 사람이 출신과 배경을 넘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도 모두 운을 만들어내는 인프라다.
좋은 사회는 모든 사람을 성공시키는 사회가 아니다.
넘어진 사람에게 다시 한번 주사위를 던질 기회를 주는 사회다.
미국에서 수많은 기업가와 창작자, 연구자가 등장한 이유도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이 특별히 더 성실하거나 뛰어나서만은 아닐 것이다. 거대한 시장과 자본, 대학과 연구기관, 다양한 인재의 유입, 실패한 창업자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개인에게 찾아온 우연을 성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므로 자녀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남보다 더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경험을 접하게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며, 자신에게 맞는 일을 탐색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노력하게 만드는 것보다 노력이 헛되게 사라지지 않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성공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큰돈을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 사람의 능력뿐 아니라 인격까지 훌륭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사람들은 성공한 이의 부모와 배경, 출발점과 인맥, 과정의 공정성까지 묻는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시기와 질투라고 말한다. 실제로 아무 이유 없이 성공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 제기를 질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어딘가에는 같은 능력으로 더 열심히 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한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독차지한 기회 때문에 밀려난 사람도 있고, 불공정한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질문까지 패자의 변명으로 취급한다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운을 노력으로 포장하는 또 다른 오만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에게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잘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운 좋게 얻었는지 알아야 한다. 나의 능력과 타인의 도움을 구분하고, 내가 통제한 것과 우연히 주어진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함부로 게으르다고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안다.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부를 쌓는 능력과 좋은 사람이 되는 능력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냉혹함과 조작성, 공감의 부족이 단기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환경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는 사람은 때로 누구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빠르게 나아갔다는 사실이 그가 지나온 길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고, 사람을 필요에 따라 가까이 했다가 버리고, 비교와 경쟁을 부추겨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쌓은 부가 있다면 우리는 결과만 보고 그 사람을 위인이라 부를 수 없다. 정상적인 계약과 경쟁은 문제가 아니지만, 돈과 권력을 이용해 사람의 존엄까지 마음대로 다룰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성과는 수단을 지워주는 면죄부가 아니다.
오히려 성공은 그 사람의 인격을 증명하기보다 감추고 있던 인격을 더 크게 드러내는 확성기에 가깝다. 힘이 없을 때는 누구나 친절할 수 있다. 거절당할 수 있는 위치에서는 누구나 예의를 지킬 수 있다. 진짜 모습은 자신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졌을 때 나타난다.
성공한 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기억하는가.
더 많은 기회를 독점하는가, 아니면 다음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는가.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오로지 개인의 욕망을 위해 쓰는가, 아니면 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기는가.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많은 것을 가진 뒤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과거의 성공론은 말했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는 조금 더 복잡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 있다.
운이 좋아도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성공해도 훌륭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실패했어도 게으르거나 부족한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노력은 여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다만 그것을 성공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자랑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찾아온 운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는 개인에게 노력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이 기회와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단순한 근면의 정신만이 아닐 것이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겸손,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구조,
성공을 위해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
그리고 운 좋게 더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이 그 행운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문화.
성공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찬양이 아니라 감사와 책임이다.
그리고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게으르다는 훈계가 아니라, 다시 한번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